라이프 오브 파이를 방금 보고 나서 결말 해석 글들을 싹 훑었다. 많은 분들이 결말에서 첫 번째 이야기와 두 번째 이야기 중 무엇이 사실이냐며, 만약 두 번째 이야기가 사실이면 '반전'이라고 말한다.
동의한다. 영화의 초반부터 끝까지 '믿음'에 대한 문제가 나온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이에 대한 내 생각과 더불어 몇 가지 내가 얻은 인사이트를 해석 하고자 한다.
비가 자작자작 내리는 오늘 넷플릭스로 라이프 오브 파이를 시청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판타지인가? 싶다가도 현실성이 아예 없진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는 다음의 두 가지 결말이 나온다.
- 첫 번째 이야기: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파이의 생존기, 하이에나, 오랑우탄, 얼룩말, 쥐 등장.
- 두 번째 이야기: 주방장, 불교신자, 엄마 그리고 식인을 한 파이의 이야기.
라이프 오브 파이 결말 해석, 인사이트 5가지
이 해석 글을 보고 계신 분들이라면 이미 내용을 다 알고 계실 거라 판단하여 자세한 줄거리는 적지 않는다. 솔직히 파이가 병원 침대에서 기자들에게 "현실적인 이야기가 듣고 싶냐"며 두 번째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소름이 돋았다. '왜 저렇게 까지 말하는 거지..? 감정 이입해서 눈물을 흘리면서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있는 나는 이미 호랑이(리처드 파커)와의 생존기를 사실로 믿고 있던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영화에서 대놓고 말했던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다. 파이의 아버지 왈, "무엇을 믿는 상관 없지만 맹목적인 믿음은 안 된다." 나는 왜 맹목적으로 믿고 있었을까. 영화 인사이트 ① 무엇을 믿든, 그것이 사실이 된다.
라이프 오브 파이에는 수많은 메타포가 장치되어 있다. 영화 초반에는 주인공 파이의 어린 시절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종교와 과학의 대립, 감정(본능)과 이성의 대립이 주로 등장한다. 호랑이와 교감할 수 있다며 호랑이에게 맨손으로 고기를 주려는 파이를 제지한 후, 아버지는 말한다. "호랑이는 짐승일 뿐 친구가 아니다. 그걸 잊는 순간 죽는 거다." 여기서 호랑이는 감정(본능)을 나타냄을 알 수 있다. 모든 인간에게는 짐승의 모습이 잠재되어 있다고 믿는다. 파이가 배에 타던 순간 짐승의 자아가 함께 탔고, 구조될 때 짐승의 자아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추가로 호랑이의 원래 이름이 thirsty며, 성당에 들른 파이에게 신부는 "you must be thirsty."라고 했다. 이는 '너 목마르구나' 또는 '네가 thisrty구나'를 의미한다.) 여기서 프로이트의 분류에 따라, 본능은 이드, 이성은 에고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특히 주인공 파이가 뗏목으로 작은 배를 만들었는데 그 공간에서 파이의 자아를 에고, 호랑이가 있는 배를 본능 자아(이드)로 볼 수도 있겠다. 영화 인사이트 ② 누구에게나 감정(본능)과 이성이 잠재하며, 감정이 의식을 지배하면 짐승이 되고, 그 사실을 잊은 자는 죽는다.
인사이트 ③번과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두 번째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파이가 살 수 있었던 건, 이성이 아니라 본능 덕분이다. 이성이 있었다면 인육을 먹지 않았을테니까. (첫 번째 이야기가 진실이라 믿으면 이성이 파이를 살린 게 된다.) 혹시 그 장면 기억하는가? 파도가 잔잔하고 별빛이 가득한 어느 밤, 바다를 응시하는 호랑이의 눈으로 들어가 온 우주를 보고, 어머니의 모습까지 보며 나올 때는 파이의 눈으로 나온다. 내게는 참 인상 깊었던 장면이다. 여기에는 상당히 종교적인 의미가 들어있다고 본다. 호랑이(본능)으로 들어가 파이(이성)으로 나온다. 우주를 만나는 건 결국 이성이 아니라 본능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는 의미 아닐까. 본능이란 꼭 생존에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길을 걷다 느끼는 따스한 바람이라든지, 흩날리는 나뭇잎이 주는 살아있음의 감정 같은, 때묻거나 계산되지 않은 모든 직관적인 것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본 영화 <소울>에서 묘사된 삶의 의미처럼 말이다. 진정한 진리탐구를 위해서 이성과 과학으로 계산하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본능과 직관으로 느껴야함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영화 인사이트 ③ 머리가 아닌 마음, 영혼으로 우주를 만날 수 있다.
파이 아버지는 항상 "이성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했다. 만약 두 번째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파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첫 번째 이야기'를 현실이라 믿고 생존한 것이다. 진정으로 파이가 엄마의 죽음과 상어떼의 습격을 목격하고, 주방장을 살해하고 식인을 했다면 맨 정신에 살 수 있었을까? 이 대목은 스스로에게 질문 해보면 좋겠다. 우리는 지금 이성이 깃든 인간이니까. 당신이라면 미치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 나라면 미쳤을 것 같다. 만약 반전이 진실이라면, 파이는 진정으로 살기 위해 자기가 믿을 수 있을만한 것을 믿은 것이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의 일종(억압, 왜곡 등)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다가 병원에서 자기 입으로 사건의 경위를 말하는 도중에, 배 위에서 거부해왔던 진실에 직면했고, 감정이 폭발한 것인지도. 물론 첫 번째 이야기가 거짓이란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실제로 바나나도 물에 뜬다고 하니 말이다. 영화 인사이트 ④ 자아 보호를 위해 거짓 현실을 만들어 믿는다.
마지막으로 종교 이야기를 하나 더 하고 싶다. 파이가 물고기를 처음 잡아올리고 망치로 머리를 쳐 기절시키고 나서 했던 말이다. "신이 물고기 모습으로.." 신은 물고기 모습으로 파이 앞에 나타났다. 어쩌면 호랑이의 모습으로 파이 앞에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또는 식인섬의 치아로도. 책 <연금술사>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무언가를 찾아가는 매 순간이 신과 조우하는 순간이었다." 모든 순간, 사건, 사물, 그 안에서의 깨달음이 다양한 신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연금술사 책에 따르면 이것은 표지이다. 계시나 힌트 같은 것.) 영화 인사이트 ⑤ 신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기억하고 싶은 명대사 모음
- 동시에 여러 개를 믿는 건 하나도 안 믿는 것과 똑같거든.
- 이미 일어난 일에 무슨 의미가 필요해요?
- 무엇보다 희망을 잃으면 안 된다.
- 의심은 좋은 거예요. 믿음을 유지해주죠. 시험에 들기 전까지는 믿음의 힘을 모르니까요.
몇 년 후에 다시보면 또 다른 해석이 나올 것 같다. 나는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간만에 제대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만나서 기분이 좋다. 이런 영화 아시면 추천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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